일본의 한 어촌(야마구치山口 현懸)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나라 시대, 당 나라에서는 천보 15년(756) 7월의 일이
다. 무카츠쿠 반도 서쪽에 토토구치 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배가 한 척이
떠내려 왔다. 배 안에는 오랜 표류로 까칠해 있었지만 대단히 기품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있었다는데 옆에 있는 시녀가
"이분은 당나라 천자인 현종황제의 애비 양귀비 이십니다. 안록산의 반란
으로 인해 처형될 형편이었는데 황제의 탄식을 차마 볼 수 없어 근위대장
이 몰래 목숨을 살려주고 이 배로 도망치게 해주어 여기까지 떠녀려오게
되었습니다."
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숨이 끊어질 듯한 양귀비를 마을 사람들은 극진하게 간호햐였지만, 그 보람도
없이 얼마 안 되어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서쪽 바다가 보이는
쿠즈의 언덕 위에 정중하게 묻어주었다. 그것은 지금 니손인의 경내에 있는
양귀비의 묘라고 전해지는 오륜탑이다. 이후로 "양귀비의 묘에 참배하면 원하는
일이 성취된다." 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현종황제는 양귀비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끊기 어려워 번민과 비탄
의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저는 일본에 표류하였사옵니다. 그곳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 았사옵니다만, 제 몸이 너무나도 허약하여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천상과 인간계가 각각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 반드시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꿈속의 양귀비의 말에, 현종황제는 백마장군 진안을 일본에 파견하고 양귀비의
영혼을 조상하기 위해 비장의 영불인 아미타여래불과 석가여래불, 그리고 13층
대보탑을 가지고 가게 하였다.
일본에 도착한 진안은 양귀비의 표착지를 찾아 다녔지만 어느 바닷가, 어느
포구인지 도무지 알수 엇었으므로 쿄토의 세료지에 맡기고 귀국해버렸다.
이후 세료지에는 이 불상에 참배하려 오는 사람들의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럭저럭 시일이 지나면서 조정에서는 양귀비의 묘가 나가토국 쿠즈의 텐쇼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두 불상을 그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세료지에서는 매우 영험이 있는 불상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쿄토에 봉안해 두고 싶다고 조정에 탄원하였다. 곤란해진 조정에서는
불공의 명수인 아마테라스 카스가에게 명하여 꼭 닮은 불상 2존을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두 사찰에 1존씩 나누어 봉안하게 했다고 한다.
아미타여래와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했으므로
"니손인이라 명하고 천하태평과 오곡풍요를 기원하며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받들도록 하라"
는 칙명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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